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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베뢰아의 귀신론을 비판한다. (21) 조회수 : 762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04-02
8. 귀신의 정체
 
8) 예수님과 마귀의 다른 점
 
⑱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보면 하나님은 말씀이라 하시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하시므로 성경이 말씀과 하나님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하나님은 영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신비는 바로 영입니다. 영은 물질이 아니요 형상이 아니어서 만질 수도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으나 우주와 모든 공간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경이로운 사실은 이 영이 인격적 기능이 있어서 지식이 있고 감정이 있으며 뜻이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희로애락을 느끼고 있으며 뜻이 있어서 계획을 세워 그 위에 전능하신 능력까지 있어서 자기가 계획하고 약속한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영적 기능과 능력과 그 실존을 믿는 것입니다.
 
⑲ 마귀와 귀신도 영이나 하나님을 배반한 영이다.
  영은 하나님만이 아니요 마귀도 영적 존재이며 귀신들도 영적 존재이며 천사들도 영적 존재이고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도 영적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은 사람은 육체 속에 영이 있어서 육체와 함께 영을 가지고 생활하지만 하나님을 비롯한 다른 영적 존재들은 육체가 없이도 기능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유의할 것은 사람도 육신이 살아있을 때도 육신 속에서 육신과 함께 살아가지만 육신이 수명을 다하여 영과 육이 분리되면 영은 또 다른 장소로 옮겨져 그곳에서 심판의 때까지 기다리다가 백보좌 심판이 끝나면 믿은 자는 영생의 천국 믿지 않는 자는 영벌의 지옥으로 떨어져서 영원히 인격적 기능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하나님은 영이심을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시고 하나님이 말씀이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내용이 있으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는 말씀입니다.
 
⑳ 예수님은 영이시고 말씀이시고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은 기록하기를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심이라."(마1:18-21)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이는 예수님은 아버지의 아들의 영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은 태초부터 있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어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서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를 정리해보면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는데 영으로 존재하신 하나님이 말씀과 함께 계셨으며 영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창세전에 창조의 계획을 세우시고 말씀으로 우주의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드셨으며 이 사람에게 말씀으로 행복한 삶의 비결을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으며 하나님은 보고 계시다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사랑에서 떠나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서 마귀의 종노릇하니 이를 더럽고 불의하게 여겨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게 하셨고 이들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이 사랑으로 아들 예수님을 보내서 대속 제물로 죽게 하시고 예수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어서 영원히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1)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선물
  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죄에서 해방 받고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며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삶의 비결을 주셨으니 예수 안에서 예수를 주인삼고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신을 사람에게 계시하시고 은혜와 축복을 주셨으나 간사한 마귀에게 속은 사람이 저주를 받아 마귀의 종노릇 하고 있으니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계명을 주시며 행복의 방법을 율법으로 알게 해주셨으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 여전히 마귀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아들 예수님을 보내서 주인으로 믿고 섬기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영원히 살게 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하신 이러한 일들이 사정 돌아가는 것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즉흥적으로 하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면밀한 계획에 의해서 하신 것이냐에 대한 해석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칼빈의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받을 자를 미리서 다 정해 놓으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의 자유의지론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은 창세전에 세워 놓으셨으나 개인의 구원까지는 정해 놓지 않으시고 믿는 자들은 다 구원을 받도록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22) 사람을 마귀 심판의 도구로 창조했다는 주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베뢰아 측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에게 하늘보좌를 유업으로 상속해 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를 심판하셔야 했고 마귀를 심판하는데 필요한 도구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만든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 받는 대가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영생할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뢰아 측의 이러한 주장은 그 생각 속에서 나온 것일 뿐 성경 어디에도 근거가 없습니다. 단지 성경은 하나님에 의한 창조와 하나님에 의한 종말이 기록돼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종말을 준비하고 영생을 얻어 누릴 것을 약속하고 계실 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유의해야 할 것은 자기 생각으로 성경을 재구성하거나 짜깁기하지 말고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요 어느 한편의 성경말씀만 중히 여기고 어느 말씀은 경히 여겨서 성경으로 성경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3) 성경은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아름다운 행복의 동산과 같은 것이며 이 행복의 동산을 구성하고 있는 각종 요소들을 따로 떼어내서 이것만 좋다하고 다른 것은 그르다 하는 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영으로 계신 것과 하나님이 보이는 세상을 창조하신 것과 하나님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피조물로 사람을 만드신 것과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에게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 것과 하나님이 계시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과 아들 예수를 마음속에 모시고 주인 삼을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신 것과 그 아들이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지고 죽어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는 것과 거룩해진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으로 사망권세를 이기고 승리하는 것과 예수님이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고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라 하고 이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24) 사랑이 없는 신앙은 불법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아무리 믿음생활 잘하는 것 같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고 그것을 불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불법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말하기를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3:4)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행했다 하더라도 죄를 짓고 하는 것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시고 능력을 행한 것으로 천국 갈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는 무엇일까요? 죄는 계명을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명 중에 최고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것을 예수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하시고 이 계명의 중요성에 대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하시므로 사랑이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할 신앙행위의 최고의 가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능력 행하는 것은 사랑의 행위 중 일부에 속한 것이지 그 자체가 신앙의 목적이나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25) 능력 행하는 것은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표적의 일부이다.
  귀신 쫒고 병 고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바로 알고 사랑을 실천하기만 하면 귀신은 틈 탈수 없고 마귀는 속일 수 없으므로 마귀의 역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를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15:7-11)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6) 사랑의 계명은 아버지의 능력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와 하나 되어 그리스도인이 예수 안에 있고 그리스도인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있으면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영광스러운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안에 있다함은 그리스도인의 삶 중에 예수의 모습이 나타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 말씀의 은혜로 온전하여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믿음으로 사는 자는 삶의 문제가 다 없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신이 능력을 행하여 귀신을 쫒고 병을 고치며 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기 때문이라 하시고 아버지의 사랑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여 그 아버지의 능력으로 모든 능력을 행하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이 경험한 아버지의 사랑의 능력을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같이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27) 사랑을 실천하면 기쁨이 넘친다.
  이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15:11)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죄를 지은 결과로 기쁨은 사라지고 근심이 생기며 두려움이 엄습하여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을 만날까 두려운 나머지 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 적발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고백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저주와 고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영을 모시고 아버지와 함께 했으며 아버지께 순종한 예수님에게는 근심 걱정이 없고 항상 하늘의 평안과 안식이 있으며 소망 중에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수님의 기쁨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삶의 방법을 알려주셨으니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28) 고통의 원인은
  첫 사람 아담은 아버지의 계명을 범하여 저주 받고 고통 받게 되었는데 둘째 아담 예수님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고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므로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받게 되었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아버지의 은혜로 능력을 행하고 권세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공생애 기간에 보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이렇게 했어도 너희는 할 수 없다고 아니하시고 너희도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29) 믿음으로 예수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는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16:20)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예수 믿은 자가 할 수 있다고 약속하시고 할 수 있는 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으며 실제로 제자들이 복음을 주의 이름으로 전할 때에 예수님이 하신 일들이 약속하신대로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영광이 증거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사도행전은 기록하기를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많은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행5:12-13) 기록된 말씀과 믿음의 확실성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똑같이 이루어집니다.
 
30) 능력은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데서 나온다.
  예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켜서 예수님과 아버지가 함께 하시는 자들이요 예수그리스도의 보혜사 성령이 역사하시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삶의 결과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정리해보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요. 예수님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사랑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자에게 나타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낸다 함은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능력을 나타낸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31)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이 이에 대하여 다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14:23-24)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인데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의 말을 지키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을 지켜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자에게는 예수님과 아버지가 함께 들어오셔서 예수님의 말을 지켜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서 예수님과 아버지와 믿는 자의 몸속에 들어가서 성전삼고 같이 사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그 몸을 성전삼고 예수님과 아버지와 믿는 자가 같이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고 말씀하시고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말씀하시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고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계명과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성령이 들어 오시겠으며 성령이 들어오시면 예수님의 하신 일을 하고 그보다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요14:12) 그러므로 성령 받으면 능력 행할 것에 대하여 예수님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2)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요. 하나님의 계명이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서 능력도 나오고 권세도 나옵니다. 사랑의 능력으로 마귀도 이기고 귀신도 이기며 죄의 유혹도 이깁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역사 하사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이시며 사랑은 말씀이시고 사랑은 계명이고 사랑은 능력입니다. 세상 사랑하면 망하게 되고 하나님 사랑하면 복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인본주의라 규정하면 하나님을 인본주의를 가르치시는 분으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인본주의 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33) 사랑은 최고의 신본주의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라 하고 예수를 주인삼고 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본주의로 규정한 베뢰아 측의 주장은 성경에 기록된 복음의 진리를 뒤엎는 것과 같은 행위로서 대단히 잘못된 것이며 기독교 신앙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본주의와 인본주의에 대한 정의는 확실하게 되어야 합니다. 신본주의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말하고 인본주의란 사람중심의 신앙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중심 하나님의 말씀중심 성령 중심하여 신앙생활을 한다면 성경구절과 상관없이 신본주의라고 할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중심하지 않고 사람의 생각 중심하여 신앙생활을 한다면 이는 성경구절과 상관없이 인본주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구절을 중심하여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를 나누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사람의 신앙중심으로만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명령하신 사랑의 계명(요13:34, 마22:37-40)을 지키는 것은 최고의 신본주의요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고전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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