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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베뢰아의 귀신론을 비판한다. (20) 조회수 : 761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04-02
8. 귀신의 정체
 
8) 예수님과 마귀의 다른 점
 
① 하나님은 거짓을 하지 않으신다.
  더러운 것을 좋아하면 더러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귀신의 가르침대로 책을 만들어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바로 귀신의 대변인 홍보자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꾸로 해석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는 주장은 그 주장 자체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이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물려받는데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하신 모든 약속은 다 거짓말이 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것도 다 거짓말이 됩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거짓말을 참이라고 주장한다면 하나님과 거짓말쟁이인 하나님의 원수 마귀와 같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시고 사람에게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뜻은 먹지 말라고 하셨으나 사실은 먹기를 바라고 계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 까닭은 사람이 먹어야 죄인이 되고 죄인이 돼야 예수님이 내려와 죽을 수 있고 내려와 재물로 죽어야 하늘보좌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으니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목적은 사람을 죄인 만들기 위해서 선악과를 지으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선악과를 만드신 목적에 맞지 않은 명령을 하신 것이며 하나님의 본래의 뜻은 사람이 먹고 죄짓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② 베뢰아 측의 주장은 마귀의 거짓말을 진실하게 받아들인 결과이다.
  베뢰아 측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에 근거하여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근거를 상실하게 됩니다.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먹기를 바라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이란 불순종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명령을 하시고 불순종하기를 바라신다. 이런 식의 해석은 하나님은 진실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시며 원칙과 기준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말씀에 순종할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죄의 유혹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생각 없이 자기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멍청이로 여기고 되지도 않은 말을 함부로 하면서 그것이 진리라고 주장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 그리스도인의 생각이라고 할 수도 없고 예수를 주인 삼은 종의 생각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실하시고 마귀와 귀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데 꼭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셨으며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서 하나님과 같은 산영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이루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게 하셨으며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함께하시는 그 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시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이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대는 조건이 있으니 하나님만 알고 마귀를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③ 마귀는 거짓말쟁이, 사망의 신, 어둠의 신, 더러운 신이다.
  마귀는 거짓말쟁이 신이고 어둠의 신이고 사망의 신이고 더러운 신이어서 마귀를 알게 되면 하나님과 교통하던 영이 마귀의 종이 됨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고 마귀의 종이 되면서 고통과 저주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그러므로 마귀를 아는 일을 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뢰아 측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음에도 사람이 먹어야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될 수 있었으니 먹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마귀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베뢰아 측의 소설인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이 없는 잘못된 주장인 것입니다.
 
④ 하나님을 이중인격자로 보는 것은 마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성경은 보이지 않은 영이신 하나님이 보이는 세계를 만드시고 그중에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죄짓지 말라. 더러워지지 말라. 거룩해라. 의롭게 살아라. 진실해라. 계속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을 가장 안전하게 표현하신 내용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8)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여 베뢰아 측의 주장을 해석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귀의 말을 들으며 마귀의 유혹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고 불순종하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처럼 이중성을 가지고 의심을 하며 불순종하여 마귀의 말을 듣고 죄를 짓는 것이 온전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⑤ 자기 좋을 대로의 성경해석은 인본주의 중에 최고의 인본주의다.
  성경을 이렇게 해석하고 하나님이 이러한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성경을 보는 기준도 무너지고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도 무너지고 특정인의 주장을 따라서 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그럴싸하게 이론을 전개하여 옳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면 그것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게 되며 이렇게 되면 기독교는 말씀은 분명하나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이중성이 있으니 그 결론적으로 자기가 좋은 해석을 하여 온전한 순종보다는 불순종을 하며 귀신만 쫓아내면 된다는 해괴한 결론에 이르게 되고 이것이야 말로 인본주의 중에 최상의 인본주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⑥ 하나님과 말씀과 성령은 하나이고 진실하다.
  성경은 하나님과 말씀이 하나님 되심을 말하고 있고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임을 말하고 있고 하나님과 성령이 하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하기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하시고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2-3)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말씀하시므로 하나님은 영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기록된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하시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14:10)고 말씀하시므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이 친히 증거 해주십니다. 또 성경은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1-6)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⑦ 하나님의 말씀에 모순은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놀라운 주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모순에 있다고 합니다. 모순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모순이란 이치에 맞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와 주장을 말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창과 방패를 파는 어떤 무기상이 있었는데 이 사람 말하기를 이 방패는 세상에 있는 어떤 창도 뚫을 수 없는 최고의 방패입니다. 이 방패 하나면 세상 어떤 창의 공격도 다 막아낼 수 있습니다. 라고 방패를 선전하였습니다. 창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이 창은 세상에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습니다. 이 창으로 뚫을 수 없는 방패는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무기 장사꾼의 말을 들어볼 때 창과 방패의 선전 중 분명 한 가지는 거짓말인데 어떤 말이 거짓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선택을 포기하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며 떠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모순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것이 못된다고 하면서 믿으라고 하는 말과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을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고 하는 말이 내용이 너무 같은 것입니다.
 
⑧ 인본주의적 성경해석은 궤변이고 하나님과 관계없다.
  뿐만 아니라 마귀를 놓고 볼 때도 이와 같이 해석한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것은 마귀 때문에 마귀를 정죄할 도구로 만들었으니 또한 마귀를 정죄해야만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우편을 차지할 수 있으니 마귀의 존재는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상속하는데 필요한 존재였다는 해석이 나오며 그렇게 해석한다면 마귀는 필요한 존재요 사람은 마귀에게 속아서 죄를 지어야만 하는 존재로 하나님이 이미 결정해 놓으셨다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축복의 약속은 거짓된 것이며 하나님이 이미 만들어 놓으신 계획 속에 사람을 넣어서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원하셨다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베뢰아 측의 주장인 마귀진멸이라는 거짓된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개발된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비 성서적 해석이요 주장이라고 할 것입니다.
 
⑨ 성경해석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성경의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성경 해석으로 성경의 다른 말씀을 부정하면 그 해석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마귀진멸을 중시한 베뢰아 측의 해석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이 새 계명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예수님이 주신 사랑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주고 있으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해 주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⑩ 사랑을 인본주의라 함은 하나님이 인본주의라 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사랑의 계명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제물로 드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에 목숨 바쳐서 순종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사람에 대한 사랑은 죄인 된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는 자기의 몸을 희생시켜서 살을 찢고 피를 흘려서 죄인을 죄에서 구원하고 마귀의 올무에서 건져내기 원하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같은 죄인을 구원하는데 자기의 목숨을 제물로 희생시킨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이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⑪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계명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하여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라 하시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보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고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시므로 이 두 계명 속에 모든 율법이 다 들어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⑫ 사랑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최고의 계명이다.
  또한 사랑을 실천하는데 세상 것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 하시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아니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8)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세상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부모님보다 더 소중한 분은 없습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요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는 관계이며 세상에 누구보다도 자기를 가장 사랑해 주신 분이요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의 사랑 속에 성장해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재하고 있기에 사람은 누구나 그 부모가 가장 소중한 존재요 사랑의 대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안 뒤 예수를 사랑하기 원하면 예수를 세상에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예수님 사랑하기를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하고 부모보다 더 사랑해야 이것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⑬ 예수님은 모든 기준을 말씀중심으로 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12:43-50) 이는 예수님이 세상의 혈육과 모친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를 더 소중히 여기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랜 어떤 여인이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7-28) 이 두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중심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혈육을 거부하거나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혈육과의 관계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중히 여기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이 모든 생각과 판단의 기준을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⑭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계명이며 믿는 자는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이와 같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해야 할 아름다운 최고의 의무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십자가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사랑의 십자가이며 이 십자가는 반드시 져야 예수님과 하나님께 합당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에 신앙에 있어서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은 다 헛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록하기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⑮ 사랑의 중요성
  성령 충만을 받아서 방언으로 기도하고 천사들과 언어가 통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런 것은 꽹과리 소리에 불과한 것으로서 사랑이 없는 영적인 능력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언을 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고 또한 그 믿음이 산을 옮길 수 있을 것 같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예언의 능력과 말씀에 대한 지식과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또한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 구제와 헌신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이 없는 신앙은 그 신앙이 아무리 영성이 있고 지식이 있고 능력이 있고 좋은 일을 많이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도 없고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이 없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아무리 잘한 것 같아도 그것은 빈껍데기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⑯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왜 이렇게 사랑이 중요하냐?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랑의 중요성에 대하여 또 한 강조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7-11)
 
⑰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서 화목제물로 죽게 하시고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케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매어서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는 불쌍한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 보내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어 그 피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성경 전체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인본주의요 마귀진멸만이 신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는 비 성경적인 잘못된 성경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예수그리스도도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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